틈(여백)에서 타오르는 생성
김민경(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큐레이터)
나무와 풀이 가득한 산에 불은 매우 위험한 불청객이다. 그리고 불은 물이 충만한 곳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산과 바다에 불이 있다. 비유적 의미에서 불꽃바위나 촛대바위로 불리우는 바위들이다. 수많은 바위 중에서 몇몇 바위만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이들이 특정한 장소를 알려주는 지표이자 매우 독특하게 형성된 외관으로 인해 기억에 남을 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당위성과는 별개로 인간에 의해 의미화된다. 이름을 부여받고 특징화를 이룸으로써 다른 대상과 구별된다. 때로 더욱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소수의 몇몇은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벼운 예로, 바위는 무병장수의 상징인 십장생의 하나로 다뤄져 왔다. 인간의 의미화는 무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신비에 쌓인 현상을 명명하고 분류하여 마침내 이해한다. 그보다는 이해했다 믿고 살아간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행위에서 허상을 좇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은지 개인전 《Flickers》는 빛이 깜박이듯, 희미하고 불분명한 허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존재를 규정하는 우리의 믿음에 내재한 허상의 측면을 드러낸다. 허상은 믿음의 모양을 흔들어 와해시킨다. 그러나 때로 이 허상은 인간이 부여한 의미화를 넘어서는 존재의 변화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리하여 결코 부정이 아닌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 될 가능성을 함께 내포한다. 깜박이는 허상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작가는 유사성과는 거리가 있는, 어쩌면 대립적인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대상, 곧 물질이나 개념을 작업의 소재로 소환하고 부딪혀 융합한다. 작가의 변증법에서 드러나는 것은 존재 안에 포섭되지 않고 남아있는 틈(여백)이다. 이 틈(여백)은 이미 자신 안에 들어와 있는 대립자이고, 결코 의미화되지 않는 존재의 측면이며, 믿음이 허상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번 전시에서 주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소재이자 작가가 지속해 천착하고 있는 매체는 종이이다. 작가는 종이를 설명하는 가장 큰 특징인 유약함―유연함으로 높은 변용성을 갖지만 그만큼 변질하기 쉬운―과 대비되는 대상성을 종이로 구현함으로써 종이의 특성을 강조하고, 종이 소재에 관한 작품적 시도를 수행한다. 부드럽고 파괴되기 쉬운 종이는 강인한 바위가 되고, 빛과 시간의 흔적이 분명한 변색된 종이는 자신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며 작품이 된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종이 작품들은 어쩌면 자신의 가장 큰 적인 ‘불’을 노래하고 있다. 작가가 종이 매체에서 끌어내는 감각적 특성들은 종이에 대한 보통의 인식과는 구별된다. 작가의 행위는 종이 매체에 관한 연구면서 동시에 작가로서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믿음, 혹은 희망과도 결부되어 있다.
전시장은 여러 〈촛대〉(01~03)바위와 〈불꽃〉(01~04)바위가 그려내는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바위로 형성되는 길은 촛대바위에서부터 불꽃바위로 이어지며, 마치 작은 불씨에서 큰불이 되는 듯한 광경을 연출한다. 모든 바위는 파쇄한 종잇조각으로 이뤄졌다. 쓰임을 다하여 버려진 종이 조각들은 쌓이고 뭉쳐 바위같이 단단해진다. 종이는 언제나 유약한가? 바위는 언제나 견고한가? 상반되는 특성을 지닌 종이와 바위의 결합체는 종이도 아니고 바위도 아닌, 부드럽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제삼의 감각적 층위를 구성한다. 종이는 단단한 바위를 흉내 낸다. 견고함을 향한 이들의 협동심은 불이나 물을 만나기 전까지 유지될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바위 어딘가 작은 틈(여백)을 남겨둔다. 벌어진 틈 사이로 바위 내면에 가득 찬 종이가 내비친다. 이로써 부스러기 종이로 쌓아 올린 굳건한 바위는 자신의 태생을 숨기지 못한다.
보통의 풍경이 자랑하는 드넓은 광활함은 보는 이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번 전시 공간의 물리적 특성을 활용해 풍경에 독특한 여백을 부여한다. 사방에 벽이 있는 전시 공간의 한쪽 면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입구가 뚫려있는 형태로 되어있다. 그렇기에 전시 공간은 열리고-닫힘을 반복하며, 자신을 드러내고-가리우는 규칙적인 틈을 가진다. 이와 같은 공간의 틈은 바위 풍경의 인식을 가능하고-불가하게 제공하며 우리의 감상을 지연시킨다. 공간의 틈(여백)은 촛대바위와 불꽃바위의 형상을 분절하고 우리의 시선을 다각도로 분산한다. 지연된 풍경은 여전히 우리 눈이 촛대바위와 불꽃바위를 보고 있는지를 묻는다. 작가는 우리 시선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이곳에서 바라봄은 의미화가 만들어 낸 풍경(자연)의 포섭되지 못한 틈(여백)을 드러낸다.
바위 풍경과 무척이나 닮은 형상이 있다. 풍경이 너무 그리워 풍경을 닮아버린 것일까? 아니면 풍경에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일까? 드로잉 <덩어리>는 풍경으로 들어온 한 존재에 관해 말한다. 어딘가 모르게 분명하지 않은 형상은 인간의 모습 같기도 하며, 인간을 닮은 바위의 초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무심해 보이는 돌덩이에서 한 명의 인간을 본다. 어쩌면 이것은 오랜 시간 웅크려 움직이지 않아 돌이 되어버린 누군가일지도 모른다. 잠시 시선을 뗀 사이 그것은 다시 움직여 달아날지도 모른다. 여러 형상이 중첩되어 있어 마치 덩어리와 같이 된 사람은 그 자체로 부정(不定)의 상태를 나타낸다. 작가에게서 덩어리는 개별-전체, 안-밖의 경계 위에 있음을 상징하며 그 자체로 모호한, 상태가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덩어리는 존재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존재의 틈(여백)이다. 사람 혹은 돌멩이일지도 모르는 이 덩어리는 우리의 시선과 끊임없이 상호 하며 대화를 시도한다. 지금 우리 눈앞에 허상으로 나타난 존재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시선이다.
타오를 불을 꿈꾸는 이가 있다. 거대한 불의 시작도 희미한 불씨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불씨〉는 발상의 시작이자 생성의 동력이며 타오를 희망이다. 불씨를 일으키기 위한 두 형태의 동력이 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행위와 자리를 지키고 움직이지 않음을 행위 하는 상반된 동력이다. 움직임은 가끔 움직이지 않는 자신을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 이동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며 부지런히 나아간다. 노력 끝에 얼어붙은 성냥과 타고 남은 초를 찾지만, 움직임은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멈춤은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했지만, 어쩌면 무거운 무게로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찰나의 스침에도 불씨가 생기리라 믿는다. 이 둘의 만남은 작고 희미하지만 하나의 불씨를 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짧지만 수수께끼 같은 작가의 에세이는 존재 내면에 자리한 틈(여백)이 일으키는 생성의 힘을 묘사한다. 타인으로부터의 구분은 안정감으로 자리한다. 그러나 때로 찾아오는 회의적 의구심은 내면의 틈(여백)을 보게 한다. 어떤 의미로도 환원될 수 없는 결핍, 곧 틈(여백)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결국 허상과도 같은 존재의 틈(여백)에서 새로운 불씨, 생성이 타오를 수 있다.
이은지는 이번 개인전에서 견고한 믿음에 드리운 허상이 반짝이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 허상이 결코 새로운 발견이 아님을 말한다. 믿음은 애초부터 허상과 함께하고 있었다. 믿음은 허상으로 완성되고 허상은 믿음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고히 한다. 우리에게 영원히 결핍으로 남아있을 것은 의미화되지 않고 남아있는 존재의 한 측면이며, 의미화되기 이전에도 살아 숨 쉬었을 존재이자 세계이다. 우리는 허상의 세계에 산다. 작가는 존재에 틈(여백)을 통해 대상의 구분됨을 지워낸다. 그리하여 더욱 분명해지는 허상은 의미에 의해 억압되어 있던 대상의 경계를 허물고, 가능성의 덩어리를 보게 한다. 틈(여백)에서 타오르는 불씨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생성의 힘이자, 작가에게는 예술을 지속하게 하는 가능성의 힘이다.
Sparks that burn in the gaps(margins)
by Minkyung Kim (Curator, Art Centre Art Moment)
Fire is a dangerous visitor in the mountains full of trees and grass. Fire is also fearful of going to bodies of water. Yet there are fires in many mountains and seas in our country. They are figuratively called flame rocks or candlestick rocks. Among the multitude of these rocks, only a few have come to be noticed, perhaps because they are indicators of a particular place and are memorable for their peculiar appearance. They become signified by humans apart from their own right to exist. They are identified from other objects by having a name and characterization; sometimes, the few we consider more special become objects of worship. As a casual example, a rock has been treated as one of the Ten Lives, a symbol of immortality. Human semanticization stems from the fear of the unknowable. We seek to name, categorize, and finally understand the unknown and the mysterious. Instead, we live believing that we have understood. Lee Eunji sees in this human behavior the pursuit of an illusion.
Leeeunji's solo exhibition Flickers is a story about illusions, faint and unclear, like flickering light. The artist reveals the fictitious aspects inherent in our beliefs to define existence. Illusions rattle and shatter the shape of our beliefs. Sometimes, however, this illusion suggests the possibility of transforming existence beyond humanly assigned meaning. Thus, it holds the prospect of being a positive force, not a negative one. How is the flickering illusion manifested? She summons, collides, and fuses objects, materials, or concepts that are far from similar, perhaps even oppositional, to the materials of her work. What emerges from the artist's dialectics is a gap(margin) that remains uncontained within existence. This gap is an opponent already within oneself, an aspect of existence that is never signified, and the moment when belief turns into an illusion.
The primary material in this exhibition and a medium that she continues to explore is paper. She emphasizes the qualities of paper and makes artistic attempts to work with the material by creating objectivity with paper that contrasts with the most dominant feature of paper: its fragility, which makes it highly malleable but also perishable. Soft and susceptible to destruction, paper becomes a strong rock, and discolored paper with clear traces of light and time becomes an artwork while preserving its functionality. The works on paper throughout the exhibition are an ode to perhaps their greatest enemy: fire. The sensory qualities that the artist elicits from the paper are unique from the common perception of paper. The artist's practice is a study of the medium and a belief or hope for sustainability as an artist.
The exhibition space is filled with landscapes depicted by several Candlestick (01-03) and Flame (01-04) rocks. The paths the rocks create lead from the candlestick rocks to the flame rocks, creating a spectacle of tiny embers turning into a large fire. All the rocks are made of shredded paper. The pieces of paper discarded after reaching the end of their usefulness pile up and become solid as rocks. Is paper always fragile? Is rock always solid? The combination of paper and rock, with their contrasting qualities, constitutes a third sensory layer that is neither paper nor rock, neither soft nor hard. The paper mimics the hardness of the rock. Their cooperation in solidity will last until they encounter fire or water. However, she leaves a small gap (margin) somewhere in the rock. Through the gap, we see the rock's interior, which is full of paper. Thus, the solid rock piled with shredded paper cannot hide its origins.
The expansive views of the typical landscape give the viewer a sense of airiness. However, the artist gives the landscape a unique margin by taking advantage of the exhibition space's physical qualities. One side of the exhibition space, with walls on all sides, has openings at regular distances. As a result, the exhibition space opens and closes, revealing and obscuring itself at regular intervals. These gaps in space make the perception of the rocky landscape both possible and impossible and delay our appreciation. The spatial gaps (margins) break up Candlestick Rock's and Flame Rock's geometry and distract our gaze in different ways. The delayed landscape asks whether our eyes still look at Candlestick Rock and Flame Rock. Lee explicitly suggests the direction of our gaze. Here, gazing reveals the uncontained gaps (margins) in the landscape (nature) created by semanticization.
There is a figure that bears a strong resemblance to a rocky landscape. Is the figure so nostalgic for the landscape that it becomes like it? Or does it want to hide itself in the landscape? The drawings Lump speak of a figure that has entered the landscape. Somehow, the indistinct figure looks like a person or perhaps a portrait of a human-like rock. We see a human being in this seemingly indifferent lump of stone; perhaps someone crouched motionless for so long that it has become stone. The moment you look away, it may move again and run away. The human figure, superimposed on a mass of other figures, represents a state of indeterminacy. For the artist, the lump symbolizes the individual whole on the border between inside and outside. It exists as an ambiguity, an undefined state, a possibility. The lump is a gap (margin) in existence because it has no clear definition. This lump, be it a person or a stone, is in constant dialog with our gaze. Our eyes determine the state of the illusory being in front of us.
There is someone who envisions a fire to burn. A great fire begins with a faint ember. Creeper(불씨) is the beginning of an idea, the fuel of creation, and the hope to ignite. There are two types of power to ignite a spark. They are the act of constantly moving and the opposite act of staying put and not moving. Movement sometimes imagines itself not moving, but it moves diligently, recognizing that it has no choice but to move. It searches for frozen matches and burned-out candles but never gives up hope. Halt has decided that movement is preferable, but even a fleeting glance will spark a flame if it can hold its ground with a heavyweight. Their encounter succeeds in igniting a spark, however small and faint. The artist's short but cryptic essay describes the generative power of the gaps in our existence. Distance from others gives way to a sense of security. But the occasional doubts force us to see the gaps within. The void, a deficiency in no sense reducible, drives us. In the end, it is in the gaps of our illusory existence that new sparks, creation, can burn.
Leeeunji tells the story of the moment when illusory images of a solid belief sparkles in this solo exhibition. She suggests that this illusion is not a new discovery. Faith has been with the illusion since the beginning. Faith is perfected by the illusion, which confirms its value through faith. What will forever remain a deficiency for us is the aspect of existence that remains unsignified, a being and a world that would have been alive and breathing before signification even existed. We live in an illusory world. She erases the distinction of the object through a gap in existence. Thus, the illusion becomes more apparent, breaking down the boundaries of the object that have been suppressed by meaning and allowing us to see the mass of possibilities. The spark that burns in the gap is the power of creation that moves us and, for the artist, the power of possibility that sustains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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