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支持)하다/기립(起立)하다
조현대
<짐과 요동>展은 지하철 2호선 을지로 3가역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두 공간, 공간 형과 중간지점에서 진행되었다. 웹상으로 확인 가능한 정보로는 그렇다. 하지만 막상 직접 찾아 나섰을 때, 이 두 곳의 접근성이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공간 형과 중간지점 모두 흔히 전시공간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모습의 건물이 아닌, 을지로 사이사이로 난 길모퉁이를 비집고 자리한 낡은 빌딩 속 자투리 공간을 점유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입지 조건은 국내, 특히 서울을 무대로 활동하는 젊은 미술인(?)에게 그리 낯설지도 않다. 최근 일정한 목적을 위해 공간을 점유(대부분은 임대차의 방식으로)하는 문제에 부딪히는 젊은 세대에게 서울 구도심의 자투리 공간은 임시적·가변적 ‘지지체’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들은¹ 그 곳에 짐을 잠시 풀어놓고, 요동치는 삶을 일단은 지탱한다.
그들은 일단 공간 형으로 관객들을 유도한다. 그리고 그 곳은 흰 종이와 검은 안료만이 그득한 무채색의 광경으로 맞이한다. 넓거나 기다란 흰 종이들이 벽이나 바닥 할 것 없이 사방을 뒤덮어 있고, 넓거나 기다란 흰 종이 위로 더 검거나 덜 검은 안료들이 얹혀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전시 공간 내부의 모든 종이들은 어떤 ‘지지체’에 의해 서(立)있다. 수직의 벽을 지지체 삼아 펼쳐 걸려 있거나, 특정한 구조물에 의해 천장에 걸려 있거나, 바닥에 설치된 구조물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종이는 물리적 특성 상 어떤 지지체가 없으면 단독으로 기립할 가능성이 희박하다(이것을 가능케 한다면 그 사람은 어디 달인 TV 프로그램에 소개될 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종이가 전시 내부에서 작품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립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보통 그 지지체로 선택 받는 전시 내 물리적 요소는 벽, 바닥이거나 전시 이전에 표구의 단계를 거쳐 별도의 틀에 의해 지지되기도 한다. <짐과 요동>展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지지의 형태는 물론 다소 실험적인 지지의 형태를 함께 발견할 수 있다. 벽이나 천장 위로 ‘펼쳐져’ 걸려 있는 종이들에서 일반적인 지지의 형태를 확인한다면, 바닥에 놓인 종이들의 기립 방식은 다소 낯설게 ‘펼쳐진’ 상태의 것들이다. 바닥에 ‘펼쳐져’ 있는 종이들은 편평한 면이 바닥을 향하여 안정적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이 상태를 종이가 누워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이 누워있는 상태 또한 가장 안정적으로 서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절단면을 바닥을 향해 두고 비교적 불안정하게 서 있는데 이것을 굉장히 가느다란 막대형의 구조물에 결합해 기대어 있는 등의 모양새다. 그리고 이는 구불구불하게 공간 내부를 구획하며, 전시를 관람하는 어렴풋한 동선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동선을 따라 조금 더 부피감이 분명한 형태로 바닥에 놓인 종이들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펼쳐져’ 있는 상태가 아니다. 첫 번째로, 마치 인쇄한 직후² 곧장 전시장에 가져다 놓은 듯 원통형 롤에 말려 서 있거나, 말린 종이의 일부만 바닥에 펼친 채로 누워 있다. 이와는 다른 패턴과 질감의 종이들은 일정한 크기와 모양으로 접지되어, 한데 모아 차곡차곡 끼워 놓고 쌓아 놓은 기묘한 모양새로 우두커니 서 있다. 롤을 가운데 두고 수없이 말려 얇은 절단면의 겹겹을 형성해 안정적 기립을 가능케 하거나, 접지된 낱장을 세우는 숱한 반복적 행위를 통해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는 단독 기립의 가능성이 희박한 종이라는 물질에 대해 고민하고 그 기립의 방식을 달리 두어 마침내 종이가 자신의 물적 특성을(얇아서 겹치기 쉬운, 얇아서 접기 쉬운) 활용해 스스로 지지체가 되는 형국이기도 하다. 종이의 물적 특성에 대한 고민에 대한 단순하지만 명쾌한 해답을 찾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종이의 펼친 면에 안료를 입혀 그림의 조형성을 전시하고 감상하는 것을 넘어 그 종이의 조건들 재고하고 그로부터 비롯한 낯선 방향의 조형성을 발견토록 한다.
또 하나의 전시 공간인 중간지점에서도 다양한 방식과 형태의 지지체에 의해 기립한 종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공간 형의 ‘서 있는’ 종이들과의 차이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공간 형의 경우 종이라는 물질에 대한 고민의 해답이 보편적인 전시의 방식과 그 곳을 채우는 개별 작품이 기립하는 형태들로 제시된다면, 중간지점의 ‘서 있는’ 종이들은 작가들의 작업적 고민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보다 현실적인 구조와 조건 내에서 ‘종이 매체’의 역할과 한계를 세심히 드러내 보인다는 점이다. 흔히들 전시장에 비치하는 리플렛과 포스터가 중간지점에도 놓여 있는데(공간 형에서는 리플렛과 포스터를 두어장 정도 벽에 붙여 놓아 간략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에 그쳐 있다), 이들 또한 분명히 서 있다. 손바닥 정도로 작은 크기의 리플렛은 공간 형에서 언급한 일례와 흡사하게 일정한 크기로 접지되어 반복적 기립 상태를 유지한다. 더욱 특이할만한 지점은 포스터의 비치 방식이다. 관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포스터는 투명하게 속을 비운 플라스틱 원통에 말린 상태로 들어가 있는데, 이 원통 역시 한쪽 벽에 설치한 구조물 위에 반복적으로 기립해 있다. 단순히 전시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여기기 마련인 리플렛과 포스터를 비치하는 방식에 그들의 작업적 고민과 해답을 적용해봄으로서 ‘전시’라는 조건이 부여된 상황 내부의 종이 매체에 대한 질문으로 연장시킨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포스터 낱장을 임의대로 접어서 가져가든지 놓고 가든지 하라는 제안을 통해 또 하나의 ‘서 있는’ 종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벽에는 그들이 축적해 온 작업의 결과물들이 각자의 물리적 조건에 적합한 보관 용기에 담겨, 역시나 서 있다. 그들은 주로 종이를 다루는 작가들이기에 기다랗고 두꺼운 원통형 지관통이 주를 이룬다. 전시 제목 ‘짐과 요동’에서 유추할 수 있듯, 펼쳐져 있지 않은 채(전시하지 않은 채) 서 있는 작품 그 자체로는 그저 짐 덩어리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임시적·가변적인 공간 점유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들 또한 서로가 서로의 무게중심에 의지해 서 있을 수 있다. 축적 중인(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고민의 결과물들은 ‘그들’에게 항상 동반해 이동해야만 하고, 기어코 어딘가 공간 구석을 점유해야 하는 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 스스로 끊임없이 생산해내어 기반이 되는 ‘지지체’로 기능한다. 요동치는 벽과 바닥에서 그들과 그들 주변의 짐들은 서로의 무게 중심을 내어주고 받아들이며 함께 ‘기립’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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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사전에 제공되었던 전시 관련 정보에 의하면 <짐과 요동>展이 박소현, 이은지 작가의 2인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는 있으나, 실제 전시는 무엇이 어느 작가의 작업인지 혹은 협업인지 아닌지 그 어떤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따라서 관람하는 도중에는 물론 사후에도 이에 대한 섣부른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필자는 이러한 정보의 제한적 제공은 작가들이 의도한 바로 해석하였고, 리뷰를 작성함에 있어도 마찬가지로 작가 2인을 따로 지칭하지 않고 정체가 불분명한 그대로 ‘그들’로 묶어(퉁쳐) 말하고자 한다.
²공간 형에 다양한 방식으로 기립해 있는 모든 종이들은 ‘그들’이 수집한 풍경/사물/이미지들을 특정한 패턴으로 반복해서 등장하도록 인쇄한 것들이다. 처음 입장한 관객은 이 종이들이 ‘인쇄’된 것들인지, 더 검고 덜 검은 안료들이 잉크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없다. 심지어 동양화의 여러 요소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 보이는 설치(종이를 말거나, 걸거나, 흘려보내는) 덕분에 그것이 먹이 아닌 잉크라는 사실을 인지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공산이 컸다.
stay/sway review
by Jo modern
stay/sway occurred in two spaces, Art space Hyeong and jungganjijeom, both of which are walking distance from the Seoul metro line 2, Euljiro-Sam-Ga subway station. At least, it says so online. However, I would say the accessibility of both spaces wasn’t very good in physical reality. They occupy very unexpected spots in the city, where you would never imagine art galleries would exist. They both are located in old buildings in Euljiro, the neighborhood with spider web-like streets. On the other hand, this kind of site condition is not unusual for young Korean artists, living and working in Seoul. Today, for the younger generation, the available (or affordable) sites in some neighborhoods that used to function prosperously become their temporal and variable ‘support-structure.’ They unpack their loads for a while and uphold their turbulent lives there.
First, the artists lead audiences to Art space Hyeong and the space welcomes you with a monochrome look created by white paper and black pigment. Varying lengths and widths of white paper covered with black pigments in different opacities surround the space from the floor to the ceiling. With a closer look, each piece of paper is standing with the help of some sort of ‘support-structure.’ Some of them are spread and hung from the wall and others are suspended from the ceiling with the help of some specific structures. The others are leaning against structures that are installed on the floor. Normally ‘a free-standing-paper’ is almost impossible to achieve due to its materiality (if someone makes it happen, they will be introduced on TV as a master). Also, to be ‘proper’ works on paper in a gallery setting, paper has to be ‘stood’ in some kind of way. The common support-structures for paper are the wall, the floor, or a stretcher. In stay/sway, the artists used those common ways to exhibit works on paper as well as quite experimental ways to support each paper. If the sheets of paper that are installed on the wall and ceiling are more commonly seen, those that are spread open on the floor are more experimental and unusual. They are not safely standing (some might say they are laying down, but I would say they are standing because this lay-down status is also one way to stand), but the edges are precariously leaning against the floor with a very thin stick structure. They divide the space to some extent and suggest a viewing flow.
Following this flow, there are some papers that have more apparent volume and shape. They are not ‘spread-open.’ First, they are rolled as if they were just printed and delivered to the gallery and a part of the rolled paper is spread open on the floor. These papers in different patterns and textures are cut and glued in the same size and shape to form an uncanny shape that stands still. This only becomes possible after the careful consideration of the material (which is almost never able to stand on its own) and developing a way to make it stand up. In other words, the paper ends up becoming its own ‘support-structure’ by using its materiality, which is so thin that it's easy to layer and fold. This is a simple but brilliant solution using the material characteristic of paper. Additionally, it suggests a reconsideration of the conditionality of paper and brings uncanniness in its form which goes beyond a simple appreciation of a drawing on paper.
The other exhibition site, jungganjijeom, features standing papers created by various methods and diverse shapes of ‘support-structures’ as well. Let’s define the difference with the ‘standing’ papers in Art space Hyeong first. If the consideration of paper as a material and its artistic answer are exhibited in a general way of putting a show together at Art space Hyeong, in jungganjijeom the ‘standing’ papers are the result of the artists’ thoughts on their work and, at the same time, express the role and limit of paper as a medium within realistic structures and conditions. The leaflets and posters at jungganjijeom are also ‘standing,’ whereas those at Art space Hyeong are hanging on the wall to give audiences the information. What is more unique is that the giveaway posters are rolled in plastic tubes, and they are also repeatedly installed on the wall structure. By applying their artistic preoccupation to their installation methods of the simply supplementary leaflets and posters, the artists extend their question to ‘the paper as a material in ‘exhibition’ space.’ Additionally, there is another ‘standing’ paper that tells the audience that they can fold the poster as they want and take it or just leave it at the gallery.
On the last wall in the space, there are numerous works by the artists that have been accumulated over time in various containers that are suited for each work. Since both of the artists work on paper, most of their containers are thick paper roll tubes. Likely the works that are unpacked - not exhibited - are just ‘loads’ as the exhibition title implies, especially because they are in a repetitive situation that occupies poetic and temporal space. However, these works can prop each other up and stand up together. Accumulating works over time means the artists always have to travel with them and allow them to take up space, but at the same time, they also function as a support structure that self-generates. On the turbulent wall and floor, the artists and their loads are giving each other their weight, but also helping each other stand together by supporting that w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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